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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세상

자살 사별자, 자살 뒤 남겨진 사람들...
사** 2024.12.11 Views 242
자살 사별자(suicide bereaved), 자살 뒤 남겨진 사람들...

지난 20241123, 세계 자살유가족의 날, 대학로 창덕궁 소극장에서 자살 사별자(suicide bereaved)들의 애도 과정을 담은 낭독극 우리가 죄인입니까?’3, 7시에 2차례 막을 올렸다.
 
 
'자살'이라는 무게에 압도되어 우리가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누군가의 자살 뒤에 남겨진 사람들이다. 지난 1123, 세계 자살유가족의 날, 대학로 창덕궁 소극장에서 자살로 가까운 이를 떠나보낸 사람들의 이야기가 무대에 올랐다.
 
자살 사별자(suicide bereaved)들의 애도 과정을 담은 낭독극 우리가 죄인입니까?’는 가까운 이의 자살을 경험한 사람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논픽션 작품이다. 이 공연은 자살예방 및 자살 사별자 지원을 위한 국내 최초 시도로서 사단법인 한국심리학회가 주최하고, 한국심리학회 자살예방위원회 고선규 위원장과 자살 사별자 지원단체 메리골드가 주관하였다.
 
고 위원장은 본 공연의 취지에 관하여 자살로 인한 사별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심리적 고통과 삶의 변화에 귀 기울이고 온전하게 슬퍼하지 못하는 수많은 자살 사별자의 애도할 권리를 증진시키고자 이들의 목소리를 낭독극의 형태로 무대에 올리게 되었다.”라고 밝혔다.
 
 
우리는 모두 자살 사별자가 될 수 있다.
 
20년째 우리는 세계 자살률 1위인 자살 공화국에 살고 있다. 20241월부터 5월까지 자살사망자 수는 6,375명으로 작년 대비 10.1% 증가율을 보이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올해 들어 하루 평균 42명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것이다. 이 충격적인 수치 이면에는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자살사망자 수가 많은 만큼 누군가를 자살로 잃은 사람들은 더 많다는 것, 그리고 우리는 누군가의 자살을 경험할 확률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한 사람의 자살은 가족뿐만 아니라, 친구, 연인, 직장동료 등 고인과 어떤 방식으로든 관계를 맺었던 모든 이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자살로 인한 상실의 아픔은 법적·물리적으로 가까운 관계양상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아이돌과 팬의 관계처럼 마음을 다했던 대상일 경우, 그 상실의 깊이를 가늠하기 어렵다. 반대로 살아생전 미워하거나 갈등관계에 있던 사람의 자살에도 상당한 충격과 고통을 겪는다. 때로는 전혀 관계없는 사람일지라도 내면에 크고 작은 흔적을 남기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이미 자살 사별자이거나, 자살 사별자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애도할 권리, 슬픔에도 자격이 필요한가.
 
극중 등장인물인 먼지(가명)는 크리스마스 날 연인의 자살 소식을 듣게 된다. 여울(가명)은 홀로 키우던 중학생 딸을, 우석(가명)은 의지하며 가깝게 지내던 사촌동생을, 그리고 멀티1,2,3(가명)은 각각 엄마, 친구, 아이돌을 자살로 잃는다. 갑작스럽고 예기치 못한 죽음의 원인이 자살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은 충분히 슬퍼할 권리마저 잃어버린다.
 
자살은 사인(死因)을 알 수 없는 죽음이다. 이유를 모른 채 남겨진 이들은 고인의 죽음을 납득하기 어렵다. 때문에 그가 왜 자살했는지 집착하며 몰두하게 된다. 그러다 결국 그 원인을 자신에게로 돌린다. ‘나 때문에 죽은 거야.’ ‘내가 그 죽음을 막지 못했어.’라며 스스로를 자책하고 비난한다. "왜 그런 거래?" "넌 전혀 몰랐어?"라는 섣부른 말들은 그들에게 비수가 되어 더 큰 죄책감에 휩싸이게 한다. 사별로 인한 상실 앞에서 온전히 슬퍼하고 위로받기 전에 그들은 이미 죄인이 된다.
 
죄책감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그들의 과거와 현재, 미래 삶까지 깊이 잠식한다. ‘내가 말했던 것, 말하지 못했던 것. 내가 행했던 것, 행하지 못했던 것.’이라는 극중 문구는 고인과 함께했던 모든 순간을 후회와 자책으로 되새기는 모습을 함축적으로 표현한다. "어느 순간에는 배고픈 것, 졸린 것도 죄책감이 들더라고요."라는 대사는 기본적인 욕구충족 마저 힘겨운 삶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먼지(가명)가 자해를 하는 장면은 죄책감이 삶을 파괴하는 치명적인 도구로 전락할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모든 상실은 애도라는 과정을 통해 치유되어야 한다. 그러나 자살 뒤에 남겨진 이들은 애도의 기회마저 박탈당하는 또 다른 상실을 겪는다. 자살 사별자 중에서도 가족이 아니거나, 고인과의 관계를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슬픔을 드러내는 것이 더욱 어렵다. 애도의 감정은 죽음의 방식이나 객관적인 관계성에 의해 점철되어선 안 된다. 우리는 모두 나와 마음을 나누었던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각자가 느끼는 대로 충분히 슬퍼할 자격이 있다. ‘애도할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다.
 
 
애도 리터러시, ‘낭독극이 만든 애도의 물결.
 
막이 내린 후, 공연장은 애도의 물결로 일렁였다. 한 관람객은 자살에 대한 기사는 많이 접해봤지만, 자살 사별자들에 대해서는 들어보지 못했다.”라며 그동안 이들에게 무관심했던 사회와 스스로를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였다. 또 다른 관람객은 자살 사별자는 결코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다. 모든 상실 후에 누구나 충분히 슬퍼하고 살아갈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라고 말하며 우리 사회가 그들의 아픔에 지속적으로 귀를 기울이고 함께 애도하는 문화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살 사별자인 친구를 둔 관람객은 사별 이후 열심히 살아가려는 친구에게 많이 힘들 텐데 정말 대단하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때 아무런 대답도 없던 친구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의 섣부른 위로가 그 친구에게 더 큰 상처가 되었을 것 같아 너무나 미안했다.”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또한 이 공연을 계기로 친구가 온전히 슬퍼할 수 있도록 곁에 있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관람객 중에는 실제 사랑하는 사람의 자살을 경험을 한 사람들도 있었다. “과거의 기억이 평생 나를 힘들게 할 것 같았는데, 막의 끝에는 떠나보낸 친구의 마지막 모습이 아닌, 행복했던 순간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고 말하며 그 친구의 삶이 불행하지만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에 큰 위로를 받았다.”고 전했다. 어느 관람객은 평소 자살에 대한 생각을 자주 했는데, 이 연극을 통해 죽지 말아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너무 미안한 일이다.”라며 눈물을 보였다.
 
이번 낭독극은 자살 사별자들의 아픔을 표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상실 앞에서 누구나 온전히 슬퍼하며 애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고 위원장은 누군가의 상실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충분히 슬퍼하도록 곁에서 돕는 일은 심리학자들이 가장 잘하는 일이자 본연의 임무라며 그들의 애도할 권리를 지지하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 또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동안 간과해 온 수많은 상실의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이고, 어떤 형태의 상실 앞에서도 온전히 슬퍼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우리 사회는 현재 다양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 심리학은 학문적 테두리 안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겪는 기본적인 삶의 과제들을 이해하고 개인과 사회가 이를 극복하도록 돕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자살의 통계적 수치 뒤에 가려진 인간의 정서적 고통에 주목하고 이를 둘러싼 사회구조적 문제들을 바라본다. 한국심리학회는 앞으로도 현재 당면한 사회적 이슈 안에서 개인 차원의 회복뿐만 아니라 공감과 이해를 바탕으로 한 건강한 공동체 형성을 위해 앞장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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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소개
이하윤
아주대학교 교육대학원 상담심리 석사과정에 있으며, 현재 교육대학원 부속 학생 상담실에서 인턴 상담사로 활동 중이다.
stellallee@ajo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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